안톤의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, 안톤은 아버지를 손님방으로 모셔 와 거의 하룻밤 사이에 전담 간병인이 되었다. 마흔여섯 살, 병원 예약 사이사이 재택근무를 하던 그에게 자기 체중은 가장 신경 쓰지 않는 일이었다. 일 년 뒤 그는 9킬로그램이 가벼워져 있었다. 쫓아다녀서가 아니라, 음식이 어디로 가는지를 마침내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.
하루에서 경계가 사라진 한 해
간병하는 하루에는 또렷한 형태가 없다. 안톤의 하루는 아침 6시 약 챙기기에서 잠들기 전 마지막 점검까지 이어졌고, 그 사이에 물리치료, 의사 전화, 식사가 빽빽이 쌓였다. 그는 조리대 앞에 선 채로 먹었고, 아버지가 접시에 남긴 것을 마저 비웠으며, 힘든 저녁은 비스킷과 뭔가 한 잔으로 보상했다.
그 어느 것도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. 바로 그게 문제였다.
"어느 한순간에 과식한 건 아니었어요." 그는 나중에 말했다. "하루 종일 조각조각 과식했고, 그 조각 중 어느 것도 한 끼처럼 보이지 않았죠."
봄이 되자 허리띠는 두 칸 안으로 옮겨졌고, 잠으로도 가시지 않는 피로가 있었다. 다이어트나 계획, 혹은 관리할 일을 하나 더 떠안을 기운이 없었다. 그에게 있는 것은 한 번에 십 초쯤의 빈틈뿐이었다.
틈새에 기록하기
안톤이 Excaloricate를 쓰기 시작한 건 십 초면 끝났기 때문이다. 무게를 재지도, 무언가를 찾아보지도 않았다. 먹은 것을 입력하거나 사진을 찍으면 추정치가 나왔다. 주전자 물이 끓는 동안 할 수 있었다.
처음 며칠은 그저 데이터였다. 그러다 패턴이 드러났다.
- 접시 비우기. 아버지의 남은 음식을 마저 먹는 것은 대부분의 날에 300~400칼로리를 더했다. 한 번도 세어본 적 없는 두 번째 작은 끼니였다.
- 간병인의 차 시간. 한 잔에 비스킷 두세 개, 하루에 네다섯 잔. 합치면 그의 점심보다 많았다.
- 힘든 날의 배달 음식. 자주는 아니지만 양이 컸고, 늘 결정할 기운조차 없을 만큼 지친 날이었다.
어느 한 숫자도 그를 놀라게 하지 않았다. 그를 놀라게 한 것은 합계였다.
작은 교체, 작아지지 않은 삶
안톤에게는 엄격한 규율을 들일 여유가 없었기에, 가장 손쉬운 것부터 바꿨다. 아버지의 접시를 비우는 걸 그만두고 대신 남은 음식을 다음 날 먹을 통에 담았다. 차 마시는 의식은 지켰다. 그가 가진 몇 안 되는 고요한 순간 중 하나였으니까. 다만 비스킷 두 개와 과일 한 조각으로 바꿨다. 고된 날을 위해 일요일에 간단한 음식 몇 가지를 미리 만들어 두어, "너무 지쳐서 못 정하겠다"가 더 이상 푸짐한 배달을 뜻하지 않게 했다.
"새로운 생활방식을 원한 게 아니었어요. 그럴 여유가 없었죠. 그저 먹은 기억조차 없는 칼로리를 더하는 걸 멈추고 싶었을 뿐입니다."
기록이 조용히 그 일을 했다. 하루치가 실시간으로 쌓이는 걸 보니 접시 비우기가 뻔히 드러났고, 뻔한 것은 내려놓기 쉽다. 그의 간병에서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. 음식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게 되었을 뿐이다.
남은 것
일 년이 지나 안톤은 9킬로그램이 줄었고, 본인 말로는 긴 하루를 더 단단히 버텼다. 예전이라면 비스킷 통으로 그를 몰던 늦은 오후의 무너짐이 줄었다. 아버지의 회복은 그 나름의 더딘 이야기였다. 하지만 안톤이 통제할 수 있는 부분만큼은, 그가 조용히 손에 쥐었다. 한 번에 십 초씩, 그 모든 것의 틈새에서.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