루카스는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었다. 자라며 먹던 음식에서 이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었다. 첫 달은 설렜다. 둘째 달에는 청바지가 잠기지 않았다. 먹는 방식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것 같았다 — 그리고 바로 그게 문제였다. 모든 것이 바뀌었는데,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다.
읽을 수 없는 언어로 된 슈퍼마켓
고향에서 루카스는 생각할 것도 없이 자기 음식을 알았다. 보통 한 인분이 어떤지, 어떤 간식이 함정인지, 한 접시에 대략 얼마가 드는지를 알았다. 같은 사람을 새로운 나라에 옮겨 놓으면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초기화된다. 라벨은 그가 아직 배우고 있는 언어였다. 빵이 달랐고, 치즈가 달랐고, 커피에는 시키지도 않은 무언가가 딸려 나왔다. 식당의 양은 더 많거나 — 더 적거나, 그냥 낯설었고 — 비교할 기준이 하나도 없었다.
일부러 과식한 게 아니었다. 그저 자신이 무엇을 먹고 있는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.
향수병에는 칼로리가 있다
더 조용한 또 하나가 있었다. 아는 사람 모두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음식은 위안이 된다. 외로운 일요일에 골목 빵집에서 사 온 페이스트리. 친구가 된 유일한 동료와의 두 번째 맥주.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그 음식을, 도시 반대편에서 그것을 만드는 유일한 가게에서 주문하는 일. 어느 것도 잘못은 아니었다. 한 달치를 더하면, 그게 청바지의 답이었다.
묘사로 기준을 되찾다
루카스가 Excaloricate를 쓰기 시작한 이유는 더없이 실용적이었다. 포장의 절반은 읽을 수 없었고, 요리의 절반은 알아보지 못했다.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것을 묘사하는 일이었다. "그 지역 만두 한 그릇, 아마 여덟 개쯤, 돼지고기 소로." "묵직한 검은 빵 한 조각에 버터와 치즈." 동네 빵집의 그 페이스트리가 마침 들어 있는 데이터베이스 따위는 필요 없었다. 그저 접시에 놓인 것을 묘사하면 추정치가 나왔다.
한두 주 만에 그는 이사가 앗아간 것을 되찾았다. 바로 기준이다. 회사 구내식당의 순해 보이던 아침이 700칼로리라는 것, 퇴근 후 맥주가 식사보다 빠르게 쌓인다는 것, 페이스트리 습관이 주 두 번은 괜찮고 주 다섯 번이면 문제가 된다는 것을 마침내 볼 수 있었다.
실제로 바뀐 것
많지 않았고, 바로 그게 핵심이었다. 그는 계속 음식을 탐험했다 — 그것이 이주한 이유의 절반이었으니까. 다만 눈감고 탐험하기를 그만두었다. 새 음식 중 무엇이 정말로 그럴 만한 가치가 있고, 무엇을 그저 거기 있고 낯설다는 이유로 먹고 있었는지를 배웠다. 일요일 페이스트리는 남기고, 반사적으로 집던 두 번째는 놓았다. 맛있으면서도 합리적인 현지 음식 두어 가지를 찾아, 평범한 날에는 그것에 기댔다.
셋째 달 말에는 청바지가 다시 잠겼다. 루카스는 고향에서처럼 먹는 방식으로 돌아간 게 아니었다 — 그럴 수도 없었고,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. 그는 그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기준을 세웠을 뿐이다. 묘사한 한 접시씩, 차곡차곡.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