코피에게는 두 살배기 아이가 있었고, 청바지가 더 이상 맞지 않게 된 이유에 대한 나름의 가설이 있었다. 부족한 잠, 헬스장에 갈 시간이 없는 것, 어린아이가 있는 집안의 전반적인 혼돈. 다 맞는 말이긴 했다. 하지만 그중 어느 것도 진짜 이유는 아니었고, 매 끼니마다 벌어지고 있던 그 일을 알아차리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.
끝내 다 비우지 못한 접시
어린아이는 어른처럼 먹지 않는다. 두어 입 먹고는 다 먹었다고 선언해 버리고, 객관적으로 봐도 아직 멀쩡한 음식이 담긴 접시를 남긴다. 코피는 그걸 버리는 걸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. 반쯤 남은 그릴드 치즈, 땅콩버터 샌드위치의 가장자리 빵, 치킨 너겟 세 조각, 버터를 발라 비빈 파스타 한 줌. 그는 싱크대로 가는 길에 작은 접시를 그대로 입으로 털어 넣곤 했다. 그건 과식의 반대처럼 느껴졌다. 음식을 낭비하지 않는 일처럼 느껴졌다.
그는 그것을 한 번도 계산에 넣지 않았다. 애초에 자기 음식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까. 그건 남은 음식이었다. 뒷정리였다. 컵을 붙들거나 식탁을 닦는 와중에 서서 해치우는, 그저 반사적인 행동이었다.
작은 입, 큰 합계
막상 제대로 들여다보고 나서 그를 놀라게 한 부분은 이것이었다. 아이가 남긴 한 끼는 양은 적지만, 하필이면 가장 안 좋은 방식으로 칼로리 밀도가 높았다. 버터 파스타, 치즈, 튀긴 너겟, 스무디의 마지막 삼분의 일. 하루에 세 번, 네 번, 매일같이 그 '그냥 정리하는' 몇 입이 쌓여 진짜 두 번째 점심이 되어 있었다. 간식이 아니라 한 끼였다. 조각조각 나뉘어 먹혀서, 자기 접시에 담긴 적이 없기에 눈에 보이지 않았던 한 끼.
게다가 그는 그 위에 자기 진짜 끼니까지 얹어 먹고 있었다. 숨어 있던 한 끼가 눈에 들어오자, 셈은 조금도 알쏭달쏭할 게 없었다.
소리 내어 이름 붙이기
코피가 Excaloricate를 쓰기 시작한 건 주로 호기심 때문이었다. 이런 걸 말로 설명하는 것만으로 정말 포착이 될까? 그래서 그는 해봤다. "애가 남긴 그릴드 치즈 반쪽하고 버터 파스타 조금." "너겟 세 개." "바나나 스무디 남은 거." 아이가 만화를 보는 동안 한 손으로, 10초면 됐다.
글로 적혀 있는 걸 보는 것만으로 무언가가 달라졌다. 그 남은 음식들은 더 이상 절약이라는 도덕적 행위가 아니었다. 그것은 하루 중 가장 큰 잉여였고, 이제 거기엔 숫자가 붙어 있었다. 갑자기 '접시를 다 비우는 일'이 미덕이라기보다는, 마음먹고 내릴 수 있는 하나의 선택처럼 느껴졌다.
실제로 바뀐 것
코피가 모든 걸 쓰레기통에 긁어 넣는 부모가 된 건 아니었다. 그건 애초에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으니까. 그가 한 일은 더 작고, 더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것이었다. 그는 아들에게 조금 적게 담아주기 시작했다. 그러면 구제할 음식도 적어졌다. 정말로 손대지 않은 것들은 자기 입 대신 반찬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었다. 그리고 정말 집어 먹을 때는 그것을 기록했다. 다른 음식과 똑같이 계산에 들어가도록.
체중계 숫자는 몇 주 만에 움직이기 시작했고, 청바지는 더 이상 매일의 실랑이 거리가 아니게 되었다. 아빠로서의 삶이 조금이라도 수월해진 건 없었다. 그저 자기가 주문하는 줄도 몰랐던 두 번째 점심을, 이제 더는 먹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.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