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레스토랑 서버 야라가 끼니처럼 느껴지지 않던 한 입 한 입을 발견하기까지

야라는 홀에서 서빙을 한 지 육 년째였다. 손님으로 꽉 찬 홀의 리듬은 집 부엌보다 더 잘 알았다 — 근무 전 직원 식사, 네 시의 소강, 저녁 러시, 마감까지 이어지는 느린 내리막. 정작 모르는 건 늘어난 오 킬로그램이 어디서 왔느냐였다. 그녀는 앉아서 먹는 일이 거의 없었다. 여덟 시간을 내리 서 있었다. 오히려 이 일이라면 날씬해져야 마땅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.

끼니라고 부른 적 없는 끼니

야라에게 근무 중에 뭘 먹느냐고 물으면 "사실 아무것도"라고 답했다. 점심도 저녁도 없이 — 커피와 물, 그리고 가끔 서빙 창구를 지나며 집는 한 줌. 그런데 그 한 줌이 자주 있었다.

주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접시에서 집는 감자튀김 세 개. 어느 테이블이 손도 안 대고 물린 디저트의 한 귀퉁이. 빵 코너의 따뜻한 롤빵 하나. 셰프가 의견을 듣고 싶어 하는 오늘의 새 특선 한 입. 앉아서 마저 먹을 "시간이 없어서" 남긴 무료 직원 식사 몇 입. 하나하나는 알아채기엔 너무 작았다. 아홉 시간 근무를 통틀어 합치면, 두 번째 저녁 식사였다.

집어 먹기가 숨는 이유

접시에 담긴 한 끼에는 테두리가 있다. 앉아서, 먹고, 끝나면, 뇌의 어딘가가 "나 먹었어"로 분류한다. 집어 먹기에는 테두리가 없다. 선 채로, 말하는 도중에, 12번 테이블로 가는 길에 입에 넣은 음식은 아예 분류되지 않는다. 아무것도 안 먹었다고 했을 때 야라는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었다 — 정말로 기억이 없었다. 어느 것도 먹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까.

이것이 식탁이 아니라 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음식의 함정이다. 계획한 저녁은 계산하기 가장 쉽다. 걸음을 멈추지 않고 집어넣는 열몇 입이야말로 조용히 한 주를 결정한다.

한 입씩, 이름 붙이기

야라가 Excaloricate를 쓰기 시작한 건 가장 실용적인 이유에서였다. 저울도 영양 표시도 곁에 없었고, 테이블 사이에 주어진 시간은 고작 십오 초. 그래도 설명하는 것만큼은 언제든 할 수 있었다. "감자튀김 한 줌." "초콜릿 케이크 반 조각." "버터 바른 롤빵 두 개." "직원 파스타 작은 그릇 하나." 창구 옆에서 십오 초, 그러면 그 한 입은 사라지지 않고 숫자가 됐다.

첫 주는 충격이었다 — 어느 하나가 커서가 아니라, 그 수가 너무 많아서였다. 집어 먹은 것들을 합치면 자정에 앉아서 먹는 저녁보다 많았다. "근무 중엔 거의 안 먹어"라는 그녀의 감각은 매 근무마다 거의 한 끼만큼 어긋나 있었다.

그녀가 바꾼 것

많지 않았고, 그게 핵심이었다. 야라는 특선 맛보기를 그만두지도, 직원 식사를 거르지도 않았다. 그저 그 한 입들이 공짜인 척하기를 그만뒀다. 직원 식사 때는 앉아서 제대로 한 인분을 먹었다 — 세 시간 뒤에 굶주려 집어 먹지 않으려고. 디저트 귀퉁이는 자신에게 허락하고, 기록했다. 한 입들을 부정하는 대신 눈에 보이게 하는 것만으로도, 중요하지 않은 입들의 유혹은 무뎌졌다.

홀은 한 번도 한산해지지 않았다. 그녀의 근무는 예전과 똑같이 길고 바빴다. 그녀는 그저 먹은 기억도 없는 한 끼를 통째로 더 먹던 일을 그만뒀을 뿐이다.

Community stories. Not medical advice. Consult a professional before changing your diet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