브람의 근무는 늘 서 있고 늘 움직이는 일이었다 — 점심 전에 만 보, 점심 후에 다시 만 보. 그는 물류 창고에서 주문을 피킹했다. 통로를 오가고, 상자를 들어 올리고, 팔레트를 끌었다. 요즘 대부분의 일자리는 이제 그만큼 몸을 쓰지 않는다. 그런데도 체중이 슬금슬금 늘어 — 삼 년에 십삼 킬로그램 — 그로서는 도무지 말이 안 됐다. "책상에 앉아 있는 누구보다 힘들게 일하는데," 그는 말하곤 했다. "왜 살찌는 게 하필 나야?"
백지수표
브람에게는 자기 몸에 대한 이론이 있었고, 그것은 단순했다. 일하면서 워낙 많이 태우니 먹는 건 뭐든 벌어들인 셈이라는 것. 저녁의 두 배 양. 근무 내내 쌓여 가는 에너지 드링크. 오후 세 시 나른함에 다녀오는 자판기. "완전히 뻗어서" 퇴근길에 사 오는 배달 음식. 하나하나가 그날의 땀으로 미리 값을 치른 것처럼 느껴졌다.
문제는, 고된 육체노동이 느낌만큼 많이 태우지 않는다는 것이다. 여덟 시간을 걷고 들어 올리는 건 진짜 노동이지만, 에너지 드링크 네 캔에 두 배 저녁, 자판기 감자칩 한 봉지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모자란다. 힘든 건 요란했지만, 실제로 태운 칼로리는 그가 짐작한 것보다 훨씬 조용했다.
힘든 정도는 숫자가 아니다
이것이 몸 쓰는 일의 정직한 함정이다. 피로는 진짜다. 근육통도 진짜다. 하지만 몸은 영수증을 주지 않고, "녹초가 됐다"는 측정값이 아니다. 브람은 자기가 얼마나 지쳤는지로 음식의 값을 매기고 있었는데 — 그 지침의 대부분은 오래 서 있고 오래 걸은 탓이었지, 칼로리 부족 때문이 아니었다.
그는 게으르지도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다. 그저 짐작했을 뿐이고, 그 짐작은 매일같이 같은 방향으로 높게 빗나갔다.
연료에 숫자를 매기다
브람은 운동을 기록하고 싶지 않았다 — 그건 공짜로 넘치도록 얻고 있었으니까. 그가 보고 싶은 건 섭취였다. 설정도 저울도 필요 없어서 Excaloricate로 기록을 시작했다. 집어 먹은 걸 설명하면 숫자가 돌아왔다. "큰 에너지 드링크." "소시지 롤 두 개." "고기 잔뜩 피자, 반 판." 사물함 앞에서 십 초, 그러면 그 항목은 느낌이 아니라 크기를 갖게 됐다.
첫 번째 놀라움은 음료였다. 한 근무에 에너지 드링크 네 캔은 거의 액체로 된 한 끼였는데, 그는 그것을 단 한 번도 음식으로 세지 않았다. 두 번째는 퇴근 후 배달 음식이었다 — 가장 신경을 덜 쓴 끼니가 하루 중 가장 큰 끼니였다.
실제로 달라진 것
브람은 일도, 움직임도, 저녁도 거의 그대로 두었다. 에너지 드링크 네 캔 중 둘을 무설탕 버전으로 바꾸고 나머지 시간엔 물을 마셨다. 자판기를 '피곤함에 대한 보상'으로 여기던 걸 그만두고 대신 점심을 제대로 챙기자, 오후 세 시의 나른함은 저절로 작아졌다. 억지로 참아서 덜 먹은 게 아니라 — 처음으로 '이건 내가 벌었다'는 하루가 실제로 얼마나 쌓이는지를 볼 수 있었기에 덜 먹은 것이다.
일은 여전히 똑같이 고됐다. 백지수표만이 부도나기를 멈췄다.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