요나스는 음식에 대해 한 번도 고민해본 적 없는 사람과 함께 살았다. 파트너인 닐스는 먹고 싶은 걸 먹었고, 요리는 늘 넉넉하게 했으며, 십 년째 똑같은 체형을 유지하고 있었다. 요나스에게는 그런 몸이 없었다. 그에게는 빼고 싶은 십일 킬로그램과, 자기가 보기엔 자신을 방해하고 있는 주방이 있었다.
한 집, 두 가지 식사법
첫 시도는 뻔한 쪽이었다. 집을 설득하는 것. 저녁을 좀 적게 해달라고 했다. 비스킷은 다른 곳에 두자고 했다. 아흐레쯤은 통했고, 그다음엔 조용히 통하지 않게 됐다. 닐스는 아무것에도 동의한 적이 없었으니까. 방해하려던 게 아니라, 늘 하던 대로 요리했을 뿐이고, 파스타 냄비에는 원래 들어가는 만큼이 들어갔을 뿐이다.
한동안 요나스는 그걸 개인적인 일로 받아들였다. 지지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. 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았다. 두 사람이 같은 음식을 먹었고, 그중 한 사람만 다른 양이 필요했을 뿐이다.
칼로리가 실제로 있던 곳
말다툼 대신 기록을 시작하자 그림은 금세 구체적으로 변했다. 요나스가 Excaloricate를 쓴 건 저울도, 레시피 분해도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. 저녁을 먹고 "카르보나라 한 접시, 큰 사이즈"라고 적으면 숫자가 돌아왔다.
세 가지가 드러났고, 그중 어느 것도 그가 싸우던 문제는 아니었다.
- 음식이 아니라 양. 닐스가 만든 음식엔 아무 문제가 없었다. 요나스는 살을 뺄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 맞춰진 양을 먹고 있었고, 팬이 거기 있으니 남은 것도 가지러 갔다.
- 밤의 꼬리. 소파에서 맥주 두 캔과 나눠 먹는 감자칩 한 봉지. 일주일에 네다섯 번. 둘 다 그걸 식사로 여기지 않았다.
- 주말. 토요일 외식, 일요일 브런치. 이틀이 닷새의 대부분을 되돌려놓고 있었다.
문제는 집이 아니었다. 그의 접시였다.
바꾼 것, 그리고 바꾸지 않은 것
요나스는 다른 사람에게 바뀌라고 하는 걸 그만뒀다. 앉기 전에 가스레인지 앞에서 자기 몫을 먼저 담았다. 접시 하나, 팬은 식탁에 올리지 않기. 함께 먹는 저녁은 그대로 두었다. 같이 먹는 것이야말로 그 시간의 핵심이었으니까.
소파 시간에는 작은 수정만 넣었다. 맥주는 주 다섯 번에서 두 번으로. 그리고 나눠 먹는 봉지에서 집어 먹는 건 그만뒀다. 나눠 먹는 봉지에는 크기라는 게 없기 때문이다. 주말은 그대로 사교의 시간으로 남겼다. 그저 기록하고, 숫자를 보고, 평일에 여유를 조금 더 남겨 그걸 흡수하게 했다.
닐스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다. 여전히 넉넉하게 요리했고, 찬장에 비스킷을 두었고, 디저트를 시켰다. 그리고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. 요나스는 두 사람의 집을 하나의 공동 규칙이 필요한 곳처럼 다뤄왔지만, 정작 그에게 필요했던 건 자기 몫의 양과 그것을 볼 수 있는 방법뿐이었다.
일 년 뒤
십일 킬로그램에는 열네 달쯤이 걸렸고, 여섯 달째 무렵에 긴 정체기가 있었다. 그는 지금 그 시기를 "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계속 기록하는 법을 배운 구간"이라고 말한다. 그가 준비하고 있던 그 대화는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. 닐스에게 덜 먹으라고 말한 적도 없다.
지금 그가 하는 말은 이렇다. 자유롭게 먹는 사람과 사는 건 불리한 조건이 아니라, 그저 염두에 두어야 할 정보 하나일 뿐이라고. 닐스의 접시는 애초에 요나스를 위한 계획이 아니었다. 그것을 따라 하기를 그만두자, 주방은 더 이상 상대편처럼 느껴지지 않았다.
